14만 명이 넘는 인구가 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과 전 JW 활동가였던 마크 마틴과 같은 사람들은 복음주의적 설교를 하지 않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토요일에 “일”합니다(유대인 달력에 따름).

물론, 안식일주의자들은 종종 안식일이 모세의 율법보다 앞선 것이며 창조 당시에 제정되었다고 선언합니다. 그렇다면 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설교하는 유대력에 따른 토요일 안식일인가? 확실히 창조 당시에는 사람이 만든 달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있다는 원칙이 참 그리스도인들의 마음과 생각에 작용한다면,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자신의 반복적이고 헛된 노력이 아니라 믿음으로, 성령을 통해 의롭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합니다. 로마서 8:9,10). 그리고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찾은 영적인 사람들, 새로운 피조물(고후 2:5)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죄와 죽음의 종살이뿐 아니라 그 죄를 속하기 위해 하는 모든 일에서도 자유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모세의 율법을 따르거나 야외 봉사 봉사의 시간을 계산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반복적인 일을 통해 구원과 하나님과의 화목을 얻으려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이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것은 자유를 위함입니다. 그런즉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졌느니라 당신은 은혜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의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느니라.” (갈라디아서 5:1,4,5)

강력한 단어들입니다! 안식일 주의자들의 가르침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와 단절될 것입니다. 당신이 "쉬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해 그릇된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이 제한된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안식일을 일몰부터 일몰까지 준수해야 합니다. 짐승(또는 다른 어떤 말도 안되는 소리)이 아마겟돈에서 멸망될 것이므로 심호흡을 하십시오. 선입견 없이 성경을 주해적으로 추론하고 논리적으로 토론해 봅시다.

첫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의인의 부활에 포함되기 위한 조건이라면 예수와 사도들이 전파한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의 많은 부분이 언급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방인을 알 수 있겠습니까? 결국 이방인들은 1,500년 이상 동안 안식일을 모세 율법의 불가분의 일부로 지켰던 유대인들과 달리 안식일 준수와 관련된 일에 대한 선입견이나 선입견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안식일에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규정하는 모세 율법이 없다면, 오늘날의 안식일 준수자들은 성경이 그런 식으로 어떤 규칙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 "일"과 "쉼"을 구성하는지에 대해 그들 자신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자리를 옮기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머무른다는 생각을 영적인 생각이 아닌 육체적인 생각으로 유지합니다. 그 덫에 빠지지 말고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된 것을 잊지 말자. “오직 믿음으로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의의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느니라.” (갈라디아서 5:5).

나는 조직된 종교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일이 천국에 가는 길이 아니며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메시야 왕국에서 섬기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성경은 구원이 우리가 행한 선행에 대한 보상이 아니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엡 2:9). 물론,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여전히 육체적인 존재라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으므로 야고보가 쓴 것처럼 우리의 믿음에 따라 행동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되다는 증거를 원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 아니냐? 그의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역사하고 그의 행함으로 그의 믿음이 온전하게 된 것을 너희가 보노라.” (약 2:20-22 BSB)

물론 안식일에 이삭을 따서 먹었다고 예수님과 제자들을 괴롭히던 바리새인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위를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곡식을 따는 것을 포함하여 안식일에 금지된 활동의 39가지 범주로 그들의 종교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자비와 공의가 결여된 억압적이고 율법주의적인 안식일 법 체계를 제정했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도우심으로써 그들의 선동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마가복음 2:27에서 볼 수 있듯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그들과 함께 추리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으로서(마태복음 12:8; 마가복음 2:28; 누가복음 6:5) 예수님은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행위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할 수 있음을 가르치기 위해 오셨습니다.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느니라.” (갈라디아서 3:26)

나중에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마태복음 21:43에서 하느님의 왕국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빼앗겨서 그 열매를 맺을 백성, 곧 이방인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이방인들이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의 은총.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인구가 많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따라서 실제로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의 필수 요소(그리고 계속되고 있는)라면, 우리는 새로 개종한 기독교 이방인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여러 차례의 빈번한 성경 권고를 볼 것으로 예상할 것입니다. 우리?

그러나 이방인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한 예를 찾아 기독교 경전에서 찾아보면 산상수훈이나 예수님의 가르침 어디에도 없고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사도행전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사도들과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안식일에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설교하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경우에 대해 읽어 보겠습니다.

“바울이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여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만 함을 설명하고 증명함."(사도행전 17:2,3)

“또 버가에서 내륙으로 여행하여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낭독한 후에 회당장들이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형제 여러분, 백성들에게 격려의 말씀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사도 행전 : 13)

“안식일마다 그는 회당에서 강론하여 유대인과 헬라인을 다 권면하시니라.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에서 내려왔을 때에 바울은 말씀에 전념하여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습니다."(사도행전 18:4,5)

안식일 준수자들은 그 성구들이 안식일에 예배를 드렸다고 지적할 것입니다. 물론 유대교의 비기독교인들은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함께 모이는 날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들에게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일해야 했습니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바울의 글을 보면 율법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를 이해하는 맥락에서 육적인 사람과 영적인 사람의 차이를 가르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들이 영의 인도를 받고 영의 인도를 받고 성문으로 된 법과 규정이나 바리새인, 서기관, “훌륭한 사도” 또는 통치권과 같은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님을 이해하라고 권고합니다 몸의 지체들(고후 2:11, 요일 5:1).

“우리가 받은 것은 세상의 영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이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노니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신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이 가르치신 말로 영의 가르침을 받은 말로 영적인 실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12).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구별은 바울이 고린도인들(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모세의 율법 언약 아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이 깨끗해질 수 없기 때문에 성령으로 가르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모세의 율법 계약 아래서 그들은 동물 희생을 바침으로써 반복적으로 죄를 속죄할 수 있는 마련이 있었습니다. 즉 동물의 피를 드려 죄를 속하기 위해 일하고 일하고 일했습니다. 그러한 희생은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성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0:5)

하느님의 성령의 활동에 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물 희생으로 죄를 속죄하는] 이 마련으로 성령 이것은 첫 장막이 서 있는 동안에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현재를 위한 비유니,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지 못함이니라. 그것들은 먹고 마시는 것과 특별히 씻는 것 곧 개혁할 때까지 부과된 외부 규례뿐입니다.” (히브리서 9:8-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자이십니다. 옛 언약인 모세의 율법 언약은 짐승의 피로 죄를 속죄할 수 있었으나 그리스도의 피는 단번에 정결케 되었느니라 양심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의. 이것은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들에게 뿌려 그 몸을 거룩하게 하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우리 양심을 사망의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브리서 9:13,14)

600가지가 넘는 구체적인 규칙과 규정이 있는 모세 율법 언약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로의 변화는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끝내셨지만, 그 다음에 오는 그러한 종류의 규칙은 우리 시대의 영이 없는 사람들의 육신의 생각에 호소합니다. 조직화된 종교의 신도들은 그 시대에 창조된 바리새인과 같이 기꺼이 법과 규정을 따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찾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그것을 찾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육신의 사고방식이며 바울은 “종파”와 “분파”(인간이 만들고 조직한 수천 개의 등록된 종교 모두)를 “육체의 일”이라고 불렀습니다(갈 5:19-21).

XNUMX세기를 돌이켜보면,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율법을 완성하실 때 여전히 “육신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세의 율법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의 종 노릇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 또한 이 문제의 증거로 바울이 유대교주의에 휘둘린 새로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꾸짖는 것을 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할례의 옛 법(모세의 율법을 준수할 수 있는 문을 여는 것)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은 유대인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배를 놓쳤다. 바울은 이러한 유대주의자들을 “정탐꾼”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영적 또는 신실한 생각이 아닌 육적인 생각을 조장하는 이 정탐꾼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문제는 어떤 거짓 형제들이 들어왔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거짓 구실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의 자유를 염탐하여 우리를 종으로 삼으려 합니다. 우리는 잠시도 그들에게 굴복하지 않았다, 이는 복음의 진리가 너희와 함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2:4,5).

바울은 참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지할 것이며 그들을 율법의 행위로 되돌리려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을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꾸짖는 또 다른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당신에게서 한 가지만 배우고 싶습니다. 당신은 성령을 율법의 행위로 받았습니까, 아니면 믿음으로 들었습니까? 당신은 너무 바보입니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신으로 끝내느냐?  정말 헛된 일이라면 헛된 고통을 겪었습니까? 하나님이 너희에게 성령을 넘치게 하시며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것은 너희가 율법을 행한다고 하여 행하느냐 듣고 믿느냐?” (갈라디아서 3:3-5)

바울은 우리에게 문제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계명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골로새서 2:14) 그들은 그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완성하셨으나 폐지하지는 않으셨습니다(마태복음 5:17). 바울은 예수에 관해 이렇게 말하면서 그 점을 설명했습니다.이는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의로운 표준을 이루려 함이니라.” (로마서 8 : 3,4)

그래서 다시 하나님의 자녀, 참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따라 행하며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종교적 규칙과 옛 법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새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월삭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안식일.” 골로새서 2:13-16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기독교인들은 자유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죽음의 종노릇 하는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따라서 영원한 죄의 본성을 가짐에 대한 속죄의 예식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어떤 구호! 그 결과 바울은 회중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부가 되는 것은 외적인 예식과 의식을 행하는 것에 달려 있지 않고 사람을 의에 이르게 하는 성령의 작용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새로운 사역을 성령의 사역이라고 불렀습니다.

“돌에 새긴 죽음의 직분이 그 영광이 그 덧없는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임하였으면 성령의 사역이 더욱 영광스럽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화로우면 의의 직분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 (고후 2 : 3-7)

바울은 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먹고 마시는 음식의 종류에 달려 있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서 14:17).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외적인 예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에 이르게 하는 성령을 구하는 것임을 거듭 강조합니다. 우리는 이 주제가 기독교 성경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을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불행히도 안식일 교인들은 이 성경의 진리를 볼 수 없습니다. Mark Martin은 실제로 “시간과 법을 바꾸려는 의도”(6부로 구성된 희망 예언 시리즈 중 하나)라는 설교 중 하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참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과 구별하고, 여기에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모든 기독교인이 포함됩니다. 뻔뻔한 발언입니다.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삼위일체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안식일주의자들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폭로하신 방식으로 폭로할 필요가 있는 그릇된 편견, 대담하고 거짓된 주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6:6) 그들은 하나님의 양자 됨을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위험합니다. 이를 위해 다른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안식일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봅시다. 그들의 웹사이트 중 하나에서 다음을 읽습니다.

안식일은 “상징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속, 표시 우리의 성화, 토큰 우리의 충성과 미리 맛보기 하나님의 왕국에서 우리의 영원한 미래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영원한 표징 그와 그의 백성 사이에." (Adventist.org/the-sabbat/에서).

고상한 단어들의 모음집이 얼마나 고상한지, 성경에 단 한 구절도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이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영원한 표징과 인 자신과 백성 사이.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사람들이 무엇인지 궁금해야 합니다. 사실 그들은 모세 율법 언약의 일부로서 안식일이 영원한 언약이 된다는 잘못된 교리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매개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맺으신 새 언약보다 더 중요하거나 그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4) 믿음에 근거합니다.

그 안식일 웹사이트 광고의 혼란스러운 작가는 성령을 식별하는 데 사용되는 성서 그리스어 용어를 사용합니다 서명, 인감, 토큰 및 승인 보증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을 위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고 안식일 의식을 묘사하기 위해 그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성경 어디에도 안식일과 관련된 인장, 표, 징표 또는 상징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신성 모독 행위입니다. 물론 히브리어 성경에서 할례언약이나 안식일언약 등을 언급하면서 '표징'과 '인'이라는 용어가 자주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지만, 그 용법은 고대 히브리어 본문에 국한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언급한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 언약의 멍에 아래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택한 양자를 택하신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보여주는 여러 구절에서 인과 표적과 성령의 보증에 관한 바울의 글을 살펴보자.

“또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들을 때에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었느니라. 너희가 믿을 때에 그 안에 봉인, 약속 된 우리의 유업을 보증하시는 보증금이신 성령 하나님의 소유된 자들을 구속하여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까지라.” (엡 1:13,14)

“이제 우리와 너희 둘을 그리스도 안에서 세우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는 우리에게 기름을 부었고, 그의 인을 우리에게 붙이시고 그의 영을 우리 마음에 두어 장래 일에 대한 보증으로 삼으사.” (고린도후서 2:1 BSB)

“하나님이 바로 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를 예비하시고 우리에게 서약으로서의 성령 장차 올 일을.” (고린도후서 2:5 BSB)

자, 지금까지 발견한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기독교 경전에는 하나님의 승인의 인으로서 안식일을 높이는 것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승인의 인으로 식별되는 것은 성령입니다. 그것은 마치 안식일 준수자들이 그리스도 예수와 그가 가르치신 좋은 소식에 대한 믿음을 행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고대의 의식적인 행위가 아니라 영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절한 주해 방식으로 어떤 요소가 좋은 소식을 구성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안식일 준수가 하나님 나라에 받아들여지는 데 불가결한 부분이라는 어떤 종류의 언급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먼저, 고린도전서 1장 6-9절에 열거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죄의 라인업에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떠오릅니다. 실제로 "로 상승했다면 목록에 있지 않을까요?"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영원한 표징 그와 그의 백성 사이” (위에서 인용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웹사이트에 따르면)?

좋은 소식에 대해 바울이 골로새인들에게 쓴 편지부터 읽어 보겠습니다. 그가 썼다:

 “우리가 들은 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당신의 믿음 그리고 하느님의 모든 백성에 대한 당신의 사랑은 당신에게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예비하신 것에 대한 확신 있는 소망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의 진리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이러한 기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너희에게 온 이 기쁜 소식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있다. 삶을 변화시켜 도처에 열매를 맺는다, 당신이 처음 듣고 이해한 그 날부터 당신의 삶을 변화시킨 것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관한 진리." (골로새서 1:4-6)

이 성구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좋은 소식이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사랑(더 이상 이스라엘 사람만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이방인으로 간주됨),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대한 진리에 대한 이해를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좋은 소식이 삶을 변화시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듣고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역사하심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의 작용으로 말미암는 것이요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매우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아무도 율법이 명하는 대로 행함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나니. 율법은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보여 줄 뿐입니다.” (로마서 3:20)

여기서 바울은 “율법”이란 이스라엘 민족의 각 성원이 수행하도록 명령받은 600개가 넘는 구체적인 규칙과 규정으로 구성된 모세의 율법 언약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행동 규범은 약 1,600년 동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덮기 위해 주신 규정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율법을 “육체로 말미암아 연약한 자”라고 불렀습니다. 이 기사에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러나 반복해야 합니다. 율법은 결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양심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거짓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사람에 대해 경고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그는 말했다 :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이제 내가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과 반대되는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라디아서 1:9)

안식일 교인들이 거짓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징표로 삼고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저주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므로 그들을 돕도록 합시다. 기원전 406년경에 율법 언약이 세워지기 약 1513년 전에 여호와(여호와)가 아브라함과 맺은 할례 언약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들에게 유익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언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후손은 대대로… 너희는 포피를 베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라…너희 육체에 있는 내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창세기 xNUMX : 17-9)

13절에서 우리는 그것을 읽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언약이었다, 실패했습니다. 기원 33년에 율법 계약이 끝난 후에는 그러한 관행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유대 기독교인들은 할례를 예수님께서 그들의 죄성을 제거하신다는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생각해야 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인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너희도 그[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할례를 받았으니 곧 너희의 육신이 벗은 것이니 할례는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이라. 그리고 세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느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골로새서 2:11,12)

그와 비슷하게 이스라엘 백성도 안식일을 지켜야 했습니다. 영원한 언약이라고 하는 할례의 언약과 같이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한정 없는 때까지 지켜야 하는 징표였습니다.

“…너희는 반드시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대대의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리라…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지켜야 하며, 그것을 후대에 대한 영원한 언약으로 지켜야 합니다. (출애굽기 13-17장)

할례의 영원한 언약과 같이 영원한 안식일 언약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방인들에게 약속을 주셨을 때 끝난 것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라디아서 4:29)

모세의 율법은 끝나고 예수님의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새 언약이 유효하게 되었습니다. 경전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는 언약과 같이 훨씬 더 아름다운 직분을 받으셨으니 그분은 더 나은 중재를 하시고 더 나은 약속에 기초를 둡니다. 그 첫 언약이 흠이 없었더면 두 번째 언약을 구할 곳이 없었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백성의 허물을 찾으시니…”(히 8:6-8)

 “새 언약을 말씀하심으로 첫 언약을 폐하시고 그리고 쓸모없고 노화되는 것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히브리서 8:13)

결론을 내리면서 우리는 모세 율법이 끝났을 때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도 끝났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일몰에서 일몰까지 안식일은 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버려졌고 그들에 의해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도들과 제자들의 공의회가 예루살렘에서 모여서 이방인들이 기독교 원칙으로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할 때, 구원의 수단으로 할례를 받는 자들의 부활 문제의 맥락에서, 안식일 준수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러한 영의 지시가 없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성령과 우리가 친히 너희에게 아무 짐도 두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으니 이는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는 것이니라.” (사도 15:28, 29)

그는 또한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이 태초에 너희 가운데서 택하사 이방인으로 내 입술에서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신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심과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셨으니. 그분은 우리와 그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5:7-9)

우리가 인식하고 묵상해야 할 것은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의 내적 상태가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베드로가 언급하고 바울이 여러 번 언급했듯이, 하나님의 자녀를 식별하는 국적이나 성별 또는 재산 수준의 외적인 구분은 없습니다(골 3:11; 갈라디아서 3:28,29). 그들은 오직 성령만이 그들을 의롭게 할 수 있으며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을 얻는 것은 사람들이 정한 의식, 규칙, 규정을 따른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모든 영적인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안식일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에 근거합니다. 바울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를 식별하는 표라고 말하는 성경적 근거는 없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영생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내적 믿음입니다! “이방인들이 이것을 듣고 기뻐하여 주의 말씀에 영광을 돌리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사도행전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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